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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읽어 본 적도 없는 책의 어떤 유명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꿈을 꿨다. 온몸이 갑자기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꿈이었다. 자빠진 것도 아니고 엉덩방아를 찧은 것도 아닌 손가락 하나하나와 팔뚝까지 가루가 되어 천천히 쓰러졌다. 이명헌은 제 오른손을 움직였다. 선 채로 졸은 듯했다.

 

방금까지 리모컨을 쥐고 있었는데 그조차 꿈이었는지 리모컨이 텔레비전 앞에 있었다. 집어 든 리모컨은 이상했다. 버튼이 적고 날렵하고 작았다. 어떻게 채널을 변경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보다 더 큰 의문은, 이 리모컨은 무엇인지였다. 난생 처음 보는 리모컨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있지 않았다면 리모컨인 줄도 몰랐을 듯했다.

 

텔레비전도 처음 봤다. 이명헌이 샀던 32인치 형은 어디 가고 무진장 크고 조미김처럼 얇은 텔레비전이 양옆 사운드바와 함께 거실을 독차지했다. 방금까지는 분명 제가 마트에 가서 산 텔레비전이었는데, 착각인가 싶을 정도로 위풍당당했다. 소파도 식탁도 똑같은데 텔레비전과 텔레비전의 리모컨만 달랐다.

 

그런데 벽지 색이 이랬던가? 들어올 때 미색으로 바르지 않았나. 이명헌이 아직도 졸고 있는 것 같은 저를 깨울 때였다.

 

도어락 소리가 났다. 제 집에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비밀번호가 꾹꾹 빠르게 눌렸다. 혹시 졸다가 남의 집에 들어온 건가? 내가 몽유병이 있던가? 그렇지만 나머지는 너무 비슷한데? 지금도 꿈인가? 칼이라도 챙겨야 하나? 칼까지 들면 내가 강도인 건가? 고민하는 동안 현관이 벌컥 열렸다.

 

그림자가 진 신발장에 남자가 우뚝 섰다. 실루엣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우성이었다. 정우성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명헌의 얼굴은 잘못 뜯긴 봉지 안의 김처럼 구겨졌다. 그도 그럴게 정우성이 이 집에 올 리가 없었다. 한발짝 한발짝 다가올 때마다 상황 분간이 어려웠다. 금방이라도 몸통박치기라도 할 기세로 들어온 것과는 달리 정우성은 멀찍이서 멈췄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

“왜 연락도 안 하고 갑자기…… 아, 그래.”

“……..”

“그나저나 너 머리가 이게 뭐야.”

 

언제 바꿨냐는 물음에도 정우성은 묵묵부답이었다. 한 이 주 전쯤 영상 통화에서는 옆을 시원하게 돌려 밀은 투블럭이었는데 머리가 제법 단정했다. 정우성의 이런 스타일은 처음 봐서 다소 아이돌처럼 보였다. 이 주만에 머리가 이만큼이나 길 수 있나? 의아할수록 이명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잠깐만. 지금 가을이잖아. 진짜 왜 돌아와. 아니, 미쳤어?”

“…….”

“미친 건 네 사정이고 재워 달라고 온 거면 호텔로 가. 나 오늘 집 비워야 해.”

“…….”

“네가 떼쓰는 거 받아줄 기분 아니라고.”

 

 

 

튀어나오는 대로 말할수록 또렷해져야 할 정신이 오히려 꿈처럼 멀었다. 현실이 괴상하고 스산한 꿈 같았다. 말많은 정우성은 답하지 않았고 리모컨은 처음 봤고 벽지는 분명히 바랬다. 애 눈빛이 멍했고 이명헌도 전염당한듯이 멍했다.

 

가만히 서 있는 둘 사이를 거친 숨소리가 메웠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긴 했어도 이명헌의 호흡은 고르었다. 숨의 주인은 정우성이었다. 방금 10km를 뛰어도 바로 전력으로 뛸 수 있는 정우성이 곧 죽을 것처럼 헉헉거렸다.

 

 

“정우성 너 왜 그래. 괜찮아?”

“이명헌이야?”

 

 

그럼 내가 누군데. 핀잔부터 나가지 않은 까닭은 정우성 얼굴이 지나치게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명헌은 슬슬 침착하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 했다.

 

 

“무슨 개소리야.”

“진짜 이명헌이에요?”

 

 

정우성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이명헌을 쏘아봤다. 눈이 이글이글 탈 정도로 노려보다 눈을 질끈 감더니 다시 눈을 뜨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했다. 이명헌은 홀린듯이 아직 쥐고 있는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처음 보는 텔레비전이 켜지고 커다란 화면에 뉴스가 떴다. 공중파 뉴스였다. 정시도 아니고 아침도 저녁도 아니었는데 뉴스가 나왔다. 속보였다.

 

……다시 한 번 전해 드리겠습니다. 실종자들이 전부 살아 돌아왔습니다. 실종자들이 오 년 전 그때 모습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대통령 대변인에 따르면 돌아온 실종자들에 대한 대책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거리의 시민들이 기뻐하고 공원에는 새들이 가득합니다. 국민 여러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앵커의 발음은 또박또박했으나 귀에 들어오는 말은 전부 흐리멍텅했다. 화면이 전환되고 기자가 엉엉 울고 있는 시민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얼굴이 시뻘개서는 코를 훌쩍이셨다. 더듬거려도 할아버지 말씀은 충분히 전달이 됐다. 사랑하는 제 딸이 가루가 되어서 사라지는 걸, 제가, 제가 분명 제 눈으로 분명히 봤었는데, 딸이 돌아왔습니다! 제 딸이 살아있었어요! 기적입니다! 이건 기적이에요……!

 

이명헌의 숨도 정우성 페이스에 말렸다. 꿈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보려다가 그대로 제 발끝부터 하체가 사라지던 장면이, 손가락 끝까지 바스라지던 기억이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었다. 시끄럽던 바깥 소리가 그저 소란이 아니었다. 층간 소음은 부활에 대한 환희의 울음이었던 셈이다.

 

머릿속에 어떤 문장이 다시 한 번, 영화관 스크린 위를 떠도는 자막처럼 박혔다.

 

방금 내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오 년 전에.

 

 

 

 

 

 

 

 

 

디딤돌도 두들겨 보고

 

 

 

 

 

 

 

 

식탁에 물잔이 놓였다. 정우성이 물을 따른 뒤 이명헌 건너편에 앉았다. 목이 타는데 목마르지는 않았다. 정우성이 딴 생수병 브랜드는 이명헌이 자주 사놓던 종류였다. 냉장고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다른 점이 더 눈에 띄었다. 사둔 적 없던 냄비나, 쓸 일도 없던 조리도구들이 부엌에 즐비했다.

 

애초에 정우성이 왜 여기 있는지가 의아했다. 이명헌이 돌아올 걸 알고 이 집으로 온 거라면 이해는 갔으나 솔직히 싫었다. 비밀번호를 진작 바꿨어야 했다. 아니지, 5년이 흘렀지. 들은 지 30분도 안 된 뉴스인데 남의 일처럼 멀었다.

 

부엌은 내내 조용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제일 신경 쓰이는 점부터 짚었다.

 

 

“텔레비전, 네가 샀어?”

“……네.”

“커졌네.”

“큰 게 좋으니까요.”

 

 

이을 건덕지가 없는 대화다. 이명헌이 대꾸하지 않자 정우성도 입을 닫았다. 목소리는 여전했는데 말투가 달랐다. 정우성도 이명헌이 영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오 년이 흘렀다. 오 년이 흘렀다면 많이 바뀌긴 했을 터다. 그렇지만 이런 돌발 상황에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조립하는 게 제 밥벌이 무기였다. 심히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명헌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장은 밖이 궁금했다. 커튼이 쳐 있어 진짜 바깥은 못 봤다. 뉴스에 나온 바로는 그리 즐거운 풍경은 아니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어요?”

“어. 없어.”

 

 

정우성이 질문할 줄은 몰라서 이명헌 대답도 짧게 끊겼다. 다시 정적이다. 정우성과 어색한 건 처음 겪는다.

 

 

“텔레비전을 네가 왜 샀어?”

“전에 건 망가졌어요.”

“아, 그래.”

 

 

전혀 대답이 되지 않는 말인데 더 묻고 싶지 않았다. 쥐어 짜낸 말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우성도 따라 일어났다. 안방 침대에 누울 작정이었는데 정우성이 먼저 쏙 들어가 버린 서재가 신경 쓰였다.

 

말이 서재지 운동 기구 몇 개와 옷을 두는 방이었다. 쫓아 들어간 방에는 옷장이 싹 사라졌다. 운동 기구 몇 개만 이명헌이 두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지런했다.  모서리에 농구공이 가득 담긴 공 바구니도 생겼다. 심지어 그 윗벽에 골대 장식이 달렸다. 인테리어가 구렸다. 아니, 그보다…….

 

 

“남의 집에 못을 박았냐?”

“내 맘이지 뭐.”

“내 집인데 네 맘이 어디 있어. 나도 아까워서 생각도 못했는데, 아니, 잠깐만. 야, 드릴로 뚫었어? 이쪽 콘크리트 아냐?”

 

 

벽을 치니 손만 아프지 텅텅 소리도 안 난다. 미친놈이 이걸 굳이 뚫었다. 뚫으라고 있는 합판 쪽 벽을 두드리니 눈알만 굴려댔다. 뚫을 거면 예쁜 걸 달지, 못생기기 짝이 없다. 못 자국을 어떻게 없앨지 궁리하는데 철물 못보다 큰 다른 못이 귀에 박혔다.

 

 

“이제 제 아파트라서요.”

“뭐?”

“그제부로 제 아파트예요.”

“진짜 뭔 소리야.”

“그렇게 됐어요.”

 

 

알아듣게 말해, 씨발……. 정우성은 서재를 빠져나갔다. 따지려고 들자니 눈앞에 휴대폰이 척 나타났다. 화면 잠금을 풀자 연락이 무진장 쌓였다. 통화 기록을 보면 부모님이 몇 년 간 수십 통을 걸었고, 오늘도 한 통을 거셨다. 그리고 그 아래는 정우성이었다.

 

 

“일단 부모님께 연락은 드려요.”

 

 

맞는 말이다. 현실 인지와 정우성과의 갑작스러운 조우로 깜빡 잊었는데 가족이 걱정이 많으실 테다. 이명헌은 바로 엄마라고 쓰인 연락처를 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통화음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연결됐다.

 

 

“명헌이야? 명헌이니? 저희 명헌이 휴대폰이죠?”

“엄마.”

 

 

명헌아!! 엄마가 전화 너머에서 울부짖었다. 아버지 목소리도 겹쳤다. 제가 겪었다는 일은 그다지 와닿지 않은 데다가 워낙 눈물이 없다시피한 이명헌도 몸은 괜찮냐는 엄마의 울고불고 못 사는 잔소리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통화하는 내내 정우성은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벽만 봤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는 질문은 전화로 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은 원래 사시던 곳에 계속 지내신다고 하셨다. 차 키를 찾자 정우성이 겉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내 차 키는?”

“형 차 배터리 나갔어요. 제 차로 가요.”

 

 

집에 두고 가기도 이상했지만 데리고 가기도 뭐 하다. 고민하는 티가 났는지 정우성이 말을 붙였다.

 

 

“혼자 가면 위험해요.”

 

 

말만 있지 설명은 없다. 180 센티미터가 넘는 남자가 혼자 나가서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제가 모르는 구석이 있겠거니 짐작헸다.

 

 

“넌 어디 있게.”

“차에 있으면 돼요.”

“오래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형 부모님네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에도 경비 있어서 괜찮아요.”

 

 

경비야 다 있는 것 아닌가. 제 아파트의 주차장을 나오며 아까 위험하다고 말한 맥락을 깨달았다. 경비가 총을 들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 달랐다. 매우 푸르른 하늘과 창문을 내리니 한없이 투명하고 맑은 공기, 아주 우거지게 피어난 풀이 도로에 빽빽했다. 나무도 무서운 줄 모르고 자라 차들은 알아서 당연하듯이 나무를 비켜갔다. 버스도 있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제와 아주 달랐다.

 

정우성은 주차장에서 이명헌을 기다리기로 했고 이명헌은 혼자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본가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부모님의 얼굴이 눈물로 잔뜩 젖은 채였다. 아버지에게 얼떨떨하게 안겼다가 어머니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 오 년이 얼마나 끔찍했고, 네가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 장장 삼십 분은 들었다. 이명헌 손을 꼭 잡은 어머니가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몰랐는데 엄마도 좀 잘 우는 스타일이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명헌은 본론을 꺼냈다.

 

 

“엄마, 내가 들은 게 있는데.”

“물 좀 마실래?”

“괜찮아. 엄마,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라는 이상한 말을 들었거든. 진짜야?”

 

 

아니길 바랐는데 엄마도, 아버지도 표정이 굳었다. 정확히는 아차차! 였다. 황당했다.

 

 

“아, 아, 아 맞다. 아, 그렇네. 어떡하지?”

“진짜라고? 진짜 정우성 집이라고?”

“우리는 네가…… 실종된 줄 알고 당연히 바로 실종 신고부터 했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설명을 시작했다.

 

당시에 눈앞에서 제 사람이 바스라지는 걸 못 본 사람들은 죽었다고 믿지 않고 실종을 택했다고 한다. 사망보다야 실종이 남은 이들에게는 희망이 남았을 테니 이해는 갔다.

 

이명헌의 부모님도 실종 신고를 했는데, 법률상 5년이 지나면 실종 선고라는 걸 한단다. 만으로 5년은 지났고 실종 선고를 하면 주민등록도 말소가 되어 이명헌의 자산, 재산, 빚 모두 유산과 유품으로 처리됐다.

 

 

“네 물건들은 대부분 우리가 처리했어.”

“명헌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래도 안 버리고 지켰다.”

“집은…….”

 

 

부모님이 동시에 말씀하신다. 우성이를 줬어. 줄 수 있다더라. 사실혼인지 뭔지로 인정을 받아서, 우리 동의 하에 네 연인에게 유산도 줄 수가 있길래…….

 

헛웃음이 나왔다. 내 집이고, 실종 선고고, 주민등록 말소고, 다 신경도 안 쓰인다. 이를 꽉 물었다.

 

 

“엄마.”

 

 

부모 앞에서 욕을 안 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겠는가.

 

 

“엄마, 나 정우성이랑 헤어졌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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