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영민한 이에게 축복이 가득하기를!
1.
후카츠 카즈나리는 으레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화목한 가정과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 그로부터 비롯된 부는 가십거리로 씹기 좋은 소재였으므로. 후카츠 카즈나리를 이루는 많은 것들에서 흠결을 찾으려 애를 쓰던 무리도 있었다. 털었을 때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그들이 신조를 방패 삼아 그와 그의 주변을 헤집고 다녔던 것도,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자가 감내해야 할 숙명 같은 것이었다. 후카츠는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미련하다는 말로 그를 깎아내렸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이들을 수도 없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물고 늘어질 만큼 집요한 사람은 없었다. 흐트러질 법한 상황에서도 후카츠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틈이 없었으니’ 여간 좋게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후카츠의 시선은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이 타인을 꿰뚫었다. 몇 사람들은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했고, 그를 마주하고 있으면 관찰 내지는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를 두고 온갖 폄하의 표현과 질투가 난무하긴 했지만, 이러한 정황적 사실은 결국 후카츠 카즈나리가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균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균열의 존재를 일찍이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그날 아침, 그의 배우자 세이코가 자녀 둘의 등교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왔다. 후카츠 가의 자녀 둘은 이제 막 십 대 중반에 접어든 연년생 남매로,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혼인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생각한다면, 후카츠 부부는 남들보다도 이르게 결혼한 편이었다. 그러니 그가 유명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 타인의 불필요한 평가를 빌리자면 ‘분에 넘치게 아름답고 능력이 좋은’ 아내가 있는 것, 그에게 자녀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은 전부 후카츠 카즈나리의 의외성에 기여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날 아침은 평소와 같았다. 찌는 듯한 더위로 평년 대비 최고 기온 기록이 경신되고 있었다. 세이코가 습관처럼 틀어 놓는 아침 뉴스에서 앵커는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에 주의해야만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사십여 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이렇게까지 뉴스에서 더위를 조심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 시간에 맞춘 듯, 폭염 주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집 안에 있는 네 대의 스마트폰이 일제히 같은 소리를 냈다. 전날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라 후카츠 가의 네 명은 모두 그 메시지의 확인 버튼을 눌러 메시지를 화면에서 지워 버렸다. 모두 메시지를 지운 직후, 후카츠의 아들이 말했다. 아침에도 더위가 상당해서, 아침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가 고되다고 했다. 딸은 특별히 말을 얹지 않고, 동생의 말에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시계를 확인했다. 보통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도 더 이르게 출근하는 편이라 아들이 말한 그 시점에 이미 집을 나선 상태였을 텐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그 시간까지도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손에 자동차 키를 쥔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아이가 등교하기 위해 가는 지하철역은 그의 출근 루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마침 등교 준비도 거의 끝이 난 상태였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차를 빼 둘 테니 오 분 내로 나와서 차를 타라고.
후카츠 카즈나리는 내부가 뜨겁게 달궈진 차에 올라탔다. 냉방을 강하게 틀어 두어도 차 안의 열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좌석의 가죽 시트가 몸에 유독 더 들러붙는 듯했다. 차양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오 분 동안, 그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라디오나 음악을 틀지도 않고, 그저 지금 있는 자리의 건너편만을 바라보았다. 앞집의 무라시게 씨는 일흔이 넘었음에도 매일 주택의 유실수와 뒷마당을 관리했다. 그날 아침의 볕이 뜨거웠음에도 무라시게 집 쪽에서는 호스로 직접 물을 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분이 지나고 아이들이 차 뒷좌석에 나란히 올라탔다. 후카츠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이내 핸들을 크게 돌려 주택가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무라시게 씨에게 손자가 있었던가? 무라시게 명패가 걸린 대문과 담장, 그 뒤쪽으로 크게 자라고 있던 살구나무까지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가 차에 앉아 건너편 집을 바라보던 시야의 바깥에 젊은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핸들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오려 할 때에야 그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젊은 남자는 후카츠 카즈나리를, 살구나무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철역은 걸어서는 가기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으나, 차로 가기에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남매는 더위를 핑계 삼은 보람이 있게 편히 지하철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역 출구 근처에 내려 주고 나서, 후카츠 카즈나리는 평소와 같은 도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2.
후카츠 카즈나리는 이 목소리를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가 내린 판단 중 가장 불분명하고 불명확한 것이었다.
남자는 ■■ 대학 병원의 후카츠 교수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후카츠는 ‘먼 길을 왔다’라는 남자의 말은 불필요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취재입니까? 후카츠가 물었다. 남자는 그런 셈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 셈이라는 모호한 대답은 후카츠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무슨 취재? 후카츠의 질문은 문장의 형태를 이루지 않았다. 단어만 조합하여 그의 의심을 드러냈을 뿐이다. 남자는 이 더운 날, 병원의 중정에 앉아 후카츠 카즈나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말로 ‘대답’했다. 그가 뱉은 문장의 단어 중 그 무엇도 후카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는 못했다.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연락을 했으면 될 일입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남자는 중정의 벤치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후카츠는 그제야 상대를 제대로 마주했다. 남자는 남들보다 크다는 평가를 듣는 후카츠보다도 키가 컸다. 한 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십 센티미터 이상. 정확한 수치는 이 지점에서 무용했다. 미지의 남자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소개가 늦었죠. 사와키타 에이지입니다. 사와키타, 들어본 성이죠? 후카츠 카즈나리는 머릿속에서 그의 환자 파일들을 뒤적였다. 인덱스. 아あ, 카か , 사 さ……. 사 행의 사와키타沢北. 그 언젠가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의 이름의 일부였다. 예, 사와키타 씨. 후카츠는 환자의 정확한 이름을,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카츠는 사와키타의 손을 잡지 않은 채였기에, 사와키타 에이지가 비어 있는 제 손을 쥐며 말했다. 우리 초면 아니잖아요. 그렇게 깊이 생각할 일인가 싶은데. 악수도 안 받아주는 건 조금 서운하고요. 후카츠는 예의 관찰하는 눈으로 사와키타를 바라보았다. 사와키타는 으레 사람들이 피하던 후카츠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후카츠는 순간, 자신이 꿰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향한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고 지냈는데, 이 순간에서야 그 평가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이런 거군. 그는 사와키타에게 역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보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라,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와키타는 후카츠를 향한 시선을 둥글게 휘어내며 미소를 짓고, 그의 손을 꽉 쥐었다. 사와키타 미사, 기억하세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다행이고, 기억을 한다면 유감이에요. 후카츠는 반문하려 했으나, 이내 그를 향한 말에 입을 차마 열 수가 없었다. 당신이 죽인 사람이니까. 후카츠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폭염 경보가 연일 울리는 여름이라 중정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손은 사와키타가 놓기 전까지 뺄 수 없었다. 사와키타는 후카츠 손의 뼈를 전부 으스러뜨릴 것처럼 꽉 잡고 있었다. 평소의 후카츠라면 평정심을 잃지 않았을 테지만, 이런 예상외의 공격에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라고는 없던 얼굴 위로 균열이 갔다. 사와키타는 후카츠의 손을 느슨하게 놓아 주었다. 피가 통하며 저릿한 감각이 후카츠의 손을 에워쌌다. 후카츠는 흰 가운 안쪽, 자신이 입은 리넨 셔츠의 뒤가 땀으로 젖는 것을 느꼈다. 필히 살인적인 더위 때문이리라.
3.
사와키타 에이지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후카츠는 사와키타를 자신의 진료실로 불러들였다. 본래도 오후 외래 진료는 없는 날이었다. 다른 일정이 오후 시간을 채우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오후 일정이 전부 취소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비어 있었다. 마치 사와키타 에이지를 만나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사와키타는 후카츠의 진료실 안을 둘러보았다. 몇 년 전에 왔을 때와 다를 게 없네요. 후카츠는 대꾸하지 않고, 사와키타의 행동을 살폈다. 사와키타는 책상 위의 심장 모형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딱딱한 것을 손톱으로 두드리는 소리. 후카츠는 불필요한 소음을 만들지 말라고 사와키타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장되어 있는 진료 기록을 훑었다. 사 행의 사와키타, 그리고 사와키타 미사. 20○○년 ○월 ○○일의 초진 기록. 몇 번의 재진. 그리고 마지막 기록. 사와키타 에이지가 말한 ‘몇 년 전’에 부합하는 날짜였다. 사와키타 미사의 출생 연도는 숫자로만 따지면 후카츠 카즈나리보다 십 년 조금 안 되게 앞서 있었다. 그리고 후카츠는 예후가 좋지 않았던 몇 환자들을 떠올렸다. 어느새 사와키타가 만들던 소음도 사라져 있었다. 후카츠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자마자 마주한 것은 사와키타의 눈이었다. 사와키타 에이지는 책상을 넘어올 것처럼, 의자를 완전히 끌어와서 상체를 기울여 후카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가 났다. 아마 사와키타의 키가 커서 무릎이 책상에 닿으며 그런 소리가 났을 터다. 어쩌면 이것은 경종을 울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후카츠는 그 경고를 외면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생각이 나세요? 사와키타가 밝게 물었고, 후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시는 거죠? 후카츠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이 콧대에서 약간 흘러내렸다. 인정할 건 없어. 왜요? 나는 수술할 때 최선을 다했으니까. 거짓말. 후카츠는 안경다리를 잡고 안경을 제대로 올려 썼다. 네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네 아버지와 같이 와서 수술 경과도 듣고, 마지막까지 간호했던 게 생각나는데. 사와키타는 몸을 뒤로 빼고, 본래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던 거리만큼을 벌려 냈다. 아까는 기억하지 못했잖아요. 어렸을 때의 사와키타 에이지와 지금의 사와키타 에이지가 달라서. 다를 건 없는데. 사와키타가 가볍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거예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고요. 그의 목소리에는 무조건적인 확신이 어려 있었다. 후카츠는 사와키타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고, 모니터에 띄워 둔 사와키타 미사의 진료 기록을 닫았다. 사와키타 에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후카츠 선생님. 사와키타가 일어서면서, 앉아 있던 후카츠 위로 그림자가 졌다. 후카츠는 빛을 등진 사와키타를 올려다보았다. 사와키타 에이지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한 확신은 선생님을 괴롭게 할 거예요. 어떠한 계시처럼, 그의 목소리가 진료실 안에서 낮게 울렸다. 또 올게요. 후카츠는 사와키타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의자는 비었고, 문은 닫혔다. 후카츠는 뒤늦게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0.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재앙은 자비가 없다. 자, 우매한 이여, 이제 재앙을 품에 기꺼이 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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